일상리뷰

음악극 <百人堂 태영>

thesse 2023. 5. 2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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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이 뭘까 궁금했는데 뮤지컬 느낌이다. 그런데 배우는 단 두명 뿐. 음악은 밴드 라이브. 생각보다 신나고 예상대로 감동적이고 너무너무 멋진 공연이었다. 이렇게 작은 프로젝트로 지나가기 아까울 만큼... 대한민국 사람들 다 보여줘야 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노래도 너무 좋은데 남은생애동안 뇌내플레이어로만 돌릴 게 아니라 음원을 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제목에서 백인당은 이태영 선생님의 호 라고 한다. 원래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 라고 하여 백번 참는 집안에 화평이 있다는 옛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태영 선생님은 여기서 참을 인 자를 사람 인 자로 바꾸어 백 사람의 집이라는 뜻으로 호를 지었다. 여성들이 참고 참아 이뤄내는 평화를 거부하고, 여성법률상담소와 같은 곳에 백 사람이 함께 모여 진정한 평등과 평화를 쟁취하고자 한 뜻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태영 선생님은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로서, 남성 종속적인 호주제 폐지와 여성 차별적인 가족법, 상속법 등을 철폐하기 위해 한평생 애쓰신 분이다. 내가 존경하는 위인이었는데 연극으로 나온다고 해서 얼마나 반갑고 설렜는지! 그리고 실제로 관람한 연극은 상상한 것보다 더 멋지고 감동적이었다.

 

 

 
오늘의 출연 배우.

 

출연 배우가 두 명 뿐인데 비거나 허전한 느낌 없이 완벽한 공연이었다. 두분 다 연기도 너무너무 잘하시고 노래도 잘하신다! 막 중간중간에 극중 인물이 아닌 배우 본체로서 토크하는 시간이 잠깐씩 있는데 (공연의 일부로써)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다시 연기가 시작될 때 순식간에 표정이며 목소리며 다른사람으로 확 변하는게 너무 신기하고 소름돋았다.
 
이봉련 배우는 일곱살 어린 태영에서부터 서서히 나이들어가는 말년의 이태영 박사까지 나이들어가는 게 별다른 분장 없이도 티가 날 정도로 연기가 섬세했고, 이예지 배우는 한번에 여러 배역을 순식간에 왔다갔다 하면서도 너무 자연스럽게 잘하셨다.
 
한가지 신기했던 점. 이 음악극의 주요 아이템 중 하나가 분필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분필로 이런저런 글씨를 쓰는 장면이 몇번 있었는데 입으로 말하는 게 손으로 쓰는 거랑 섞이지 않는게 신기했다 ㅋㅋㅋㅋㅋㅋ 연습을 많이 하셨겠지??
 

연출도 정말 좋은 연출이 많았다. 특히 시작할때부터 바닥에 분필로 선을 긋고 시작하면서 극중에 끊임없이 이런 저런 선이 그어지는데 태영은 매번 이를 넘어선다. 마지막에는 수십년에 걸쳐 그어진 수많은 선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마침내 잘 드는 가위 하나로 썩둑 잘라내면서 끝이 나는데 여운이 장난이 아니었다.

 

 

 

극장 안은 찍지 못했지만 입구에 작게 설치된 공간이 있었다.
 
공중에 띄워진 종이들은 당시의 부당한 가족법 조문이나 가족법 개정을 요구하는 탄원문, 여성 단체들의 선언서, 건의문 등이었고 그 옆으로는 타자기와 종이가 놓인 책상이 있었다. 저 기계식 타자기는 실제로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관람객이 책상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원하는 글자를 타이핑 할 수 있도록 해 둔 것이었다.

 

설레면서 책상에 앉아 타자기에 종이를 끼웠는데, 글쎄 고장이 났는지 글씨가 제자리에만 찍히고 옆으로 넘어가질 않는 것이다! 친구와 함께 몇번 조작 시도를 해보았지만 괜히 고장만 낼까봐 사진만 찍고 일어났다ㅠ 작동을 한다면 이 말을 쓰고 싶었다. "관습의 노예가 아닌 역사의 창조자가 되라!" 극 중에서 나온 이태영 선생님의 말씀인데 너무 감명깊고 멋있어서 인상에 남았다.

 

 

예매한 표를 현장수령하면서 받은 브로슈어에 나와있는 문구인데, 저 말도 너무 멋지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게 아니라 제자리를 찾았을 따름이다. 심지어 저때는 (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갖춘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 세기에 가까운 선생님의 투쟁 끝에 수많은 불평등 조항과 악법이 개정되었으니 그 혜택을 나눠받는 우리세대도 뒷 세대에게 뭔가를 남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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